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항주 서호에서 뱃놀이하다

반응형
2003년 8월 3일 (항주) 2일차
 
항주의 아침은 찌는 듯한 더위로 부터 시작이다.
 

항주 성도빈관 전경.

 
 
항주는 절강성의 성도로 중국역사상 14대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으며
마르코폴로가 이곳을 방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라고 격찬한 곳이다.

항주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월(越)이란 지방이었으며 월나라의 이웃엔
현재의 강소성 소주를 중심으로 하는 오(吳)나라가 있었다.
두 나라는 사이가 나빠 항상 으르릉 거리며 지내는 사이로
오월동주(吳越同舟)란 말이 이곳에서 나왔다.
오(吳)와 월(越)이 같은배를 타고 으르릉 거리는 사이로 관계가 불편한 사이란
말이다.

기원 496년 오왕인 합려가 월나라의 구천왕이 즉위한 즉시 기회를 노리고
월나라를 치기위해 출병을 했지만 월나라가 의외로 강해
취이라는 곳에서 오군은 크게 패했다.
그리고 합려는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게된다.
오나라의 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위해 군사력을 키우며 때를 노리고 있었는데 월나라의 왕
구천은 기선을 제압하기위해 오나라를 다시 치게되었는데 오히려
오군에게 패해 회계산이란 곳에 숨어들게 되었고
진퇴유곡에 빠진 월왕 구천은 신하 범려의 조언을 듣고 항복하고 말았다.
보물과 미녀들을 바치고 오나라의 신하로 합려를 섬길 것을 맹세하게
된다.

그러나 월왕 구천은 거짓으로 항복했고 속으로는 언젠가 복수하리라는
마음으로 쓸개를 옆에두고 잠자리에 들기전,음식을 먹기전에 쓰디쓴
쓸개를 핧으며(嘗膽) 복수를 다짐했다고 한다.
또한 오왕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때까지 울퉁불퉁한 땔나무위에서
잤다(臥薪)고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이 고사에서 유래하는데 중국[사기]에는
상담(嘗膽)이란 말만 나와있고 와신(臥薪)은 언급이 없다고 한다.
 

 

이태백이 달밤에 시를 읊었다는 서호를 구경하러 나서기전에 식당에서 점심시사부터 한다.

서호 유람산을 타고 서호를 반바퀴 정도 돌아보는 것이 서호관광이다.
 
 

서호(西湖) 와 동파육

서호는 항주성의 서쪽에 있어 서호라한다. 시나 글속에는 "서자호"나 "서시호"라고 미녀들의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표현이란다.
 
장한가등으로  유명한 시인 백거이가 이곳에서  지방장관으로 지내며 둑을 쌓아 물을 모으고 관개에 이용하엿다. 그래서 그가 쌓은 둑은 "백제(百堤)"라고하며 백거이가 항주를  떠나고  1089년 소식 (호 동파)이 16년만에 두번째로 항주의 지사가 되어 부임하여 호수의 진흙을 퍼내 서쪽편으로 둑을 쌓았는데 이를 "소제(蘇堤)"라 한다. ;
소식이 진흙을 파내 호수를 준설하며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진휼미를 지급하고 공사중 매일 호수에 나와 시찰했다고 한다.
백성들이 이에 감복하여 소동파에게 설날 선물로 돼지고기를 선물하였는데 그는 고기를 요리하여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이 항주의 대표적인 요리 동파육(東坡肉)이며 돼지 삼겹살에 술, 파, 간장, 생강, 설탕등을 넣고 밀봉한후 두 시간정도 끓여서 만드는 요리이다.
 
  

 
 동파육
가이드는 동파육 한조각에 4-5$하는 비싼 것이니 겉모습만 보고 겁내지 말고 부디 드시고 가라고 야단이다.
 
 
지금은 이 서쪽편 둑이 진흙이 쌓여 물이 없어 맨땅이 되었고 집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요즈음 중국 정부가 집들을 철거하고 다시 진흙을 파내어 호수를 복원중이었다.
 

서호 유람선
 
배를 타고 움직이니 그래도 바람이 불어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호수안에 섬을 만들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서호를 떠나 영은사로 가는 길에 또 쇼핑코스인 옥가게를 잠시 들른 후 영은사입구의 바위에 각종 불상을 조각
해놓은 비래봉을 거쳐...영은사로 들어갔다.
제일 압권인 미소짓고 있는 배불뚝이 불상...
 
 
 

불상

 

잠시 걸어서 영은사라는 절에 도착했다.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기도하는 중국 사람들
 

영은사

 
영은사
 
동진(東晉)시대 인도 승려 혜리가 326년에 창건한 절로써
16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절로 천축산 계곡에 자리잡았다.
마애석불인 새겨져 있는 비래봉을 따라 올라오면 절에 당도한다.

대웅보전은 높이가 33.6 m 에 달한다.그러나 여러차례의 전쟁으로
완전 소실되어 19세기 이후 중건하여 복원한 절이다.
석가모니상은 19.6 m 이며 연화대를 포함 23.6 m이다.
불상은 24개의 나무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에 금을
도금한 것으로 금의 무게가 44 Kg이 들었다고 한다.
1953년 보수시 주은래가 금 44Kg을 희사하고 두번씩이나 심사를 했다고 한다.

뒷편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은 발로 잉어를 밟고 있는데
잉어는 지진을 예견하고 방지한다고 한다.
관세음 보살상의 뒤편에 잇는 조각품들은 찹쌀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발맛사지를 받은 후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후...
입구가 멋진 식당에서 저녁식사.
 
 

발의 반사구역을 난타낸 그림

 

 
 
 
온갖 것들을 다파는 야시장
 
야시장 구경을 나서 이것 저것 구경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웃통을 홀랑 벗고 돌아다닌다.
더워서 구경하는 것도 힘들어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반응형
Recent Posts
Popular Posts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05-17 17:19